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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구름

책 떠나다

레테레테 2024. 6. 27. 09:22

연한 푸른빛 하늘에
깃털 같은 구름이 길게 드리웠다
포레스트 검프의 그것처럼.
맨살에 닿는 바람이 
약간은 산득하다.
한여름은 아닌가 보다.
집을 나오며 책장을 보니
텅 비었다.
십여년 만의 정리다.
그 많던 책들은 다른 주인이 필요할 듯해서.
책이 그 장소를 떠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 남은 건 대략 50여 권이 안된다.
정리하며 세어보니
380권 정도 되더라.
이번에 정리하며 알게 된 거 하나.
책을 정리할 생각이 있으면
절대로 책에 아무 짓도 해서는 안된다.
뭐라도 써있는 순간
가치가 1/3로 줄어든다.
고물상에 가져다줄까 했는데
그 많고 무거운 것들을 옮긴다는 건
이 더위에 무리.
그저 가져가 준 것만도 고맙다.
그리 애지중지하던 것들이었는데
정리한다고 하니 
섭섭하면서도 한시라도 빨리 가져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은 가격 때문인지
쳐다보기만 하고 
그 시간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암튼 그가 말하는 대로 그냥 하자고 했다.
바나나 상자로 꽉꽉 채워서
9박스가 좀 넘었네.
그가 말하길
"이젠 책 사지 말고 빌려 보세요.
이런 베스트셀러는 너무 많아요.
그런데 책 분야가 다양하긴 하네요.
정말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책이 너무 깨끗해서 안 읽은 줄 알았어요.
다 읽은 거 맞죠.
그리고 이런 드라마 대본집은 사지 마세요."
하며
이젠 자기네 서점을 찾는 사람이 한 달에 5명 정도밖에 안 된다 한다.
그래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책을 사겠지.
이젠 사면 책에 아무 짓도 하지 않을꺼다.
읽고 싶은 책들이 많긴 한데.
처음엔 받은 돈으로 책을 사려고 했는데
어떻게 쓸까.
뭘 해야 내가 평생 모아 두었던 것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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