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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사막속으로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야 나 이거 또 잊어버렸다. 어떻게 하지- 하며 휴대폰을 들고 온다. 지난번에 문자랑 사진 보내는 법을 설명했는데 이틀 쉬고 나니 다시 원상태로 복귀. 전혀 생각이 안난대. 다시 처음부터 시작. 아 어렵다. 보내는 사람을 선택하고 반짝거리는 선이 있는 곳에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사진을 보내고 싶으면 네모 안에 산이 그려진 것을 누르고 보낼 사진을 선택하고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누르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된다. 자꾸만 전에 보낸 사진을 누르니 사진을 저장하라고 나오니 그게 아니라 해도 안된다. 할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보낸 문자와 사진을 다 지우는 걸로. 그러고 나니 쉽게 사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ㅎㅎ 엄마도 살기 힘드네. 계속 폴더폰을 쓰다가..
어제부터 제법 춥다. 음 겨울, 시작인 것인가. 갑자기 김장을 한단다. 말이 김장이지. 그냥 김치 담그는 거다. 해마다 포기수가 줄어들고 있다. 급기야 올해는 진짜 김장이라 말할 수조차 없다. 그것도 김장이라고 좀 힘드네. 일일이 칼로 무채를 썰고 갓이랑 파 썰고. 마늘 찧고 나니 끝.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빨리 해야 한단다. 배추가 딱 맞게 절여졌다고. 대충 아침 먹고 준비를 했다. 매년 엄마가 배추 속을 버무렸는데 올해는 나보고 하라네. 고춧가루를 넣고 골고루 섞어 버무리다가 소금 넣고 마늘 파 생강 넣고 섞은 후 갓이랑 파를 넣었다. 올해에는 찹쌀풀도 쑤어서 넣었다. 엄마가 속을 조금 넣으라고 해서 조금 넣었더니 너무 조금이라며 다시 하라네. ㅎㅎ 조금 남은 무채를 조금씩 더 넣어 주었다. 우린 ..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머물렀던 구름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구름이 떠나간 자리에 바람이 분다. 거세게. 나뭇가지가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온몸을 흔들어댄다. 나뭇잎들은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지만 속수무책. 나뭇잎들이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그틈을 놓치지 않고 비가 내린다. 거센 바람을 등에 업고서. 바닥에 내리 꽃힌 빗방울들이 콩볶듯 튀어 오르자 춤추는 작은 왕관들이 마당에 가득하다. 모두 자기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구름도 바람도 나무도 나뭇잎도 비도.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혹은 그 반대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눈 뜨는 아침이 싫으면서도 기다려지는 이유. 아침에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커피가 어떤 맛일까. 느티나무가 오늘 아침과 어떻게 다를까. 은행나무들이 어떤 모습일까. 개울에 오리와 새끼오리들은 왔을까. 백로는. 왜가리도 왔나. 개울가 까마귀는 오늘도 있을까 코스모스와 보랏빛 나팔꽃은 지지 않고 있겠지. 작년에 피었던 그 이름모를 흰꽃은 올해 왜 안보일까. 회사 가기 전까지 모두들 잘 있는지 궁금하니까...
출근길. 느티나무가 빨갛다. 곱게 물들어 간다. 며칠 전 비가 온 여파인지 나무들이 휑하다. 앙상해진 나무들을 보면 춥고 쓸쓸해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나무들이 그 무거운 잎들을 걷어내고 조금은 홀가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사는 내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붙어 있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홀가분하게 다 떠나보내고 그 추운 겨울에 매서운 비와 바람과 눈을 맞으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게 아닐까. 봄 여름 가을 그 세계절동안 그들을 건사하느라 온 힘을 썼으니 온몸으로 겨울을 느끼며 정리하고 쉬는 시간이 아닐까. 사람에게도 그런 쉬어감이 필요하다.
며칠 전 어마무시한 비가 한바탕 휩쓸고 갔다. 나무 아래 있던 차들이 나뭇잎으로 뒤덮였다. 보기엔 예쁜데 그걸 다 어떻게 떼어낼지. 차주인은 엄청 난감할 듯하다. 경비아저씨들도 힘든 하루를 보냈겠지. 퇴근길에 보니 길이며 인도가 말끔하다. 그들에겐 고된 하루였으리라. 억수 같은 비에 사진을 찍는 이들은 대게 어린 사람들이었고 나이 든 사람들은 농작물 걱정을 했다. 난 이도 저도 아닌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지붕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던 그 아이. 아마 잘 살고 있겠지. 느티나무가 곱게 물들어간다. 노랗고 빨갛게. 느티나무는 사계절 내내 예쁘다 ? 봄엔 앙상한 가지에 작은 잎들이 돋아나고 여름엔 짙은 녹색잎들이 커져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엔 알록달록 예쁜 색들을 보여주고 겨울엔..
내가 좋아하는 나도 샤프란. 화단에서 키우면 잘 크는데 집에만 들여오면 무성하고 이들이들하던 잎들도 성성이가 되고 만다. 아는분에게 얻어 왔는데 삼분의 일도 남지 않았다. 해마다 하얀꽃대가 여러대 올라 왔었는데 올해는 대 여섯송이정도 밖에 보지 못했다. 저 꽃이 아마 올해 마지막 꽃일지도 모른다. 아 안타까워라. 영양분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해도 보고 비도 맞으며 커야 하나봐. 하얀 꽃이 참 예쁘다. 엄마가 한마디 한다. 왜 그리 비실비실한 꽃을 좋아하냐고. ㅎㅎ 글쎄 그냥 좋다. 맑고 깨끗해보여서. 아기같은 순수함이랄까. 우리집에서만 비실비실하지 화단에 있는 꽃은 정말 풍성하고 예쁘다. ^^
가을 하늘은 파랗다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서 푹 쉴 줄 알았다. ㅎㅎ 하긴 오전엔 잠도 자고 좀 쉬었다. 점심 먹기전까지만 해도 그럴 줄 알았다. 근데 거기까지만. 점심을 먹고 나니 초롱무를 사야 한단다. 김치를 해야 한다고. 무만 사면 된다기에 나간김에 황톳길을 걷기로 했다. 반 코스만. 정방향은 너무 경사가 가팔라서 못 간다고 해서 역방향으로 걸었다. 느릿느릿. 20분 걸리는 거리를 30분 좀 넘게 걸었다. 걸으며 작은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소나무 향이 정말 좋다. 향긋한게. 지난 목요일에 서울에 다녀와서 엄만 좀 힘들다 했지만 그래도 잘 걸었다. 걷고 나선 늘 그러했듯이 그 카페로 갔다. 지난주보다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그늘엔 자리가 다 비었고 해가 드는 곳엔 자리가 없다. 자리를 잡고 보니 저쪽..